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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화) 2월이면 바빠지는 누드모델, 이런 요구는 사양합니다

 봄학기가 시작되기 전, 2월 초는 누드모델이 휴대전화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때다. 전국 미술대학교들의 수업 시간표 구성이 완료되고, 모델 배정을 위해 연락이 오고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중개업체(에이전시)에 등록되어 있는 모델이라면 회사에서 고정 일을 배정하고, 프리랜서라면 대학교에 이력서(포트폴리오)를 보내고 핸드폰에 등록되어 있는 조교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방학 동안 느슨해졌던 뱃살에 다시 힘을 주는 때이기도 하다. 누드모델, 특히 여성 누드모델이 프리랜서보다는 에이전시와 일을 하는 이유는 직접 영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사진 촬영 등에서 무리한 요구를 받거나 대금을 떼이는 경우를 회사가 막아주기 때문이다.    특히 사진 촬영의 경우 후자의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모델 일은 보통 시간을 단위로 임금을 받는데, 촬영은 작가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이뤄진다. 통상 그러면 촬영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들이는 시간에 비해 가져가는 돈이 실속 없을 때도 있다. 누드모델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몸이 잘 관리되고 포즈에 능숙한 사람이다. 특히 의료 촬영이나 공연의 단역 같은 일은 인지도와는 완전히 무관하다. 유명한 모델이라고 돈을 더 주지도 않고, 알려진 얼굴이라고 해서 임금을 깎지도 않는다. 누드모델이 유명해지면 쓸데없이 페이만 높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거친 분류이기는 하지만 배우는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커리어가 연장되는 것에 비해, 모델은 인지도가 쌓일수록 수명이 짧아진다. '얼굴 없는 비너스'라는 수식어는 모델로서는 일종의 자조적 표현이다.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 선생님들이나 다양한 포즈를 배우고 싶어하는 크로키 교실에서는 아무래도 새로운 모델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자주 다녔던 화실에 또 불려가면, 수강생이 '또 같은 모델이 왔네요'라고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모델마다 자신의 신체 특성과 선호하는 콘셉트가 있어 비슷한 포즈가 반복되기에, 배우는 사람으로서는 ...

[오마이뉴스] (1화) 10년차 누드모델입니다, 엄마에게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10년차 누드모델이고 레즈비언이다. 성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부모님에게 내 직업을 털어놓는 것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내 비장한 고백에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는데, 몇 년 전 연말정산으로 드러난 내 주된 수입원을 보고 어디서 배워 온 것 같은 반응을 했다. "엄마가 널 키울 때... 뭘 잘못 했니?" 누드모델이라는 직업은 이제 많이 알려졌지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누드모델의 영역은 생각보다 넓다. 미술이나 사진 작업 외에 의료 목적으로 필요한 MRI 촬영, 3D 모델링, 영화의 단역, 공연의 엑스트라 일도 있다. 반드시 옷을 벗어야 하는 일은 아니기에, '누드모델'은 사실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영어권의 동의어로 'figure model'을 번역한 '인체모델'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일은 나체를 필요로 하고, 국내에서는 더 일반적인 단어이기에 이 글에서는 누드모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나는 주로 조소, 회화, 크로키 등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누드모델 일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건 두 가지다. "팬티까지 벗어요? 오래 버티는 거 힘들지 않아요?"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네, 누드모델인 걸요. 아뇨, 가만히 있는 것보다 자세를 바꾸는 게 더 어려워요"라고.   화실에서 모델의 포즈는 크게는 두 종류로 나뉜다. 조소나 유화 작업처럼 하나의 자세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고정 포즈와 '손을 푼다'고 표현되는, 3~5분 크로키 포즈. 어느 쪽이든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자세를 취하려면, 몸의 모든 관절에 각도를 줘야 한다. 척추는 회전하고, 어깨와 골반은 기울어지고, 무릎도 팔꿈치도 직선이어선 안 된다. 이걸 갖추면서도 20~30분 동안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근...

(미완) “페미니즘은 소문자 f로 시작해 복수형 -s로 끝난다.”

기고 거절당했고. 일부 여기에 남긴다.  이후 내용 추가 예정….이지만 과연 쓸까? -- “페미니즘은 소문자 f로 시작해 복수형 -s로 끝난다.”는 말은 이제 원출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널리 퍼진 문장이다. 페미니즘은 (대문자 F로 대표될 수 있을 정도로) 합의된 개념이 아니며, 사회의 근본 모순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지부터 운동의 주체를 누구로 설정할 것인지까지 수없이 다양한 ‘노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제, 주체, 지향, 전략 등 몇 가지 지표를 통하여 페미니즘의 세대(물결)나 계보(갈래)를 구분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구분 안에서조차 페미니스트들은 언제나 서로에게 동일성보다 차이를 발견하곤 한다. 최근 한국의 페미니즘은 거칠게 이름 붙여진 ‘교차성 페미니즘’과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양분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명명의 적절성을 논하는 것1)과는 별개로, 양자 모두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지형 속에서 그 위치를 짚어 보아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의제화한 역사는 짧지 않다. 1913년 ‘송죽회’로부터, 가깝게는 1970년대의 여성학 학제화, 1980년대의 여성운동단체 조직, 1990년대의 성희롱 의제화와 출판문화운동, 2000년대의 호주제 폐지ㆍ반성폭력ㆍ성정치ㆍ사이버 문화운동까지, 한국 여성운동은 사회적 변화에 발맞추어 정치세력화와 대중화를 고민하며 발전해왔다. 민족ㆍ민주ㆍ민중 운동의 맥락 속에서 법 개정을 주요 목표이자 전략으로 삼은 한국의 여성운동은 태생적으로 외연과 확장성이 넓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10년대 중반을 대중적 페미니즘 ‘물결’의 분기점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다수 존재한다.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확산된 해시태그 릴레이2),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에 응답한 포스트잇 추모 시위, ‘4非 운동3)’ㆍ‘탈 코르셋’ 실천4), ‘혜화역 시위5)’, 낙태죄 폐지 운동 등 다양한 의제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은 급격히 대중화되고 분화하였다. 시민단체로 조직되고 노동조합ㆍ...

[La terra] 여름, 2017에서 봄, 2018까지

그녀와 연애 씩이나 하게 된 건 일종의 위악이었다. 씨발 나 다시는 페미 안 사겨. 고학력자 지긋지긋해, 부치를 고르는 기준은 역시 팔씨름이지, 이죽이던 말들. 얼마 후 그 ‘이상형’에 놀랄 만큼 부합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일단 키가 백팔십에, 어릴 때 부터 농구를 했고, 체대를 갔고, 대학 졸업을 못해서 고졸이고, 지금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퀴어문화축제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고 이쪽 인맥도 싫고 조용히 둘이서 지내는게 좋다던 사람, 내 치마가 너무 짧다고 항상 불만이던 사람, 누드모델이란 직업은 인정하지만 ‘내 여자’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뭐가 문젠지도 모르던 사람. 로다 번개로 처음 만난 날 당연한 듯 모텔로 향하려는 내게 그녀는 ‘난 사귀는 사람이랑만 자’ ‘그러니까 우리 사귀자’라며 무슨 로비스트같은(내 은밀한 취향을 파악한 누군가가 파견한 듯한) 말들을 던졌다. 만나는 내내 나는 그녀의 말도 안 되는 데서 삑사리가 나는 맞춤법, 상상 이상으로 상식 이하인 모습 등을 친구들과 낄낄대며 그녀를 깎아내렸다. 무엇보다, 영원히 함께하자, 너랑 결혼 할거야, 같은 말들을 ‘겁도 없이’ 내뱉는 그녀를 비웃었다. (역시) 무식하기는. 요새 누가 평생 한 사람을 만나, 라면서. 그녀의 생일날, 선물이랍시고 육보시를 하겠다며 란제리를 입은 나에게 애인은 “규리야 사랑한다”, 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당황스러웠다. 사랑이 뭘까? 라며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후 오랫동안 나는 그저 그녀의 기분에 맞추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나도 사랑해. 그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했단 걸 이제야 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언제나, 믿기를 염원하던 말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게 너였기 때문에, 왜냐하면 너는 누구를 무시하지도 비웃지도 이죽대지도 낄낄거리지도 않는 사람이니까, 영원이니 평생이니 하는 말을 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곤 했으니까. 너는 ...

접속유지

 원문읽기:  https://slownews.kr/37208 음악, 여성학, 무용, 영상 분야 패널  백수정:  밴드 ‘다이 올라잇'(Die Alright)의 드러머이자 4년 차 시각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 외에 캔들을 만들어 부업 삼아 판매하고 있다. 오는 3월 즈음 회사를 때려치운 뒤 캔들을 주 수입으로 삼고 디자인 외주 일을 기반으로 밴드 생활을 꾸려나갈 예정이다. 정규리: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소설가의 꿈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갔으나 여자만 줄창 만나다가 여성학과에 진학, 퀴어 이론을 공부하고 번역까지 하게 되었다. ‘성적/노동’에 대한 석사 논문을 쓰려고 누드모델회사에 잠입했다가 적성을 깨닫고 생업으로 삼은 지 1년 반이 되었다. 장래 희망은 레즈비언을 위한 성적 콘텐츠(포르노/에로잡지/야설)등을 생산하는 것. [가가 페미니즘]을 공역했다. 한봄: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현재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 환경운동이 무용과 만나는 지점을 모색 중이다. 정용:  몇 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오랜 기간 영화를 준비 중이다. 창작자의 밥벌이와 작업에 관한 좌담회 ‘접속유지’ (사진 제공: 정언) [divide style=”2″] 1. 작업 & 밥벌이: 어떻게 병행하나? 한봄 (무용):  만약 내가 이 분야에서 작업과 일을 잘 병행하는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한다면, 아마 학원에서 입시생 두세 명을 받아서 그 학생들에게 작품비를 500에서 1,000만 원가량 받고, 학원에서 받는 월급만 200~300되고, 학원도 두세 군데씩 뛰고, 이런 시스템으로 굴러갈 거다. 또 무대에도 자주 서는 무용수가 되고.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대다수 무용 전공자는 나와 같이 힘겨운 삶을 산다. 지금 수요가 높은 시장은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어린이 발레다. 유치원과 연계된 업체에서 전공자들을 일 년 단위 계약직으로 고용해 수업에 할애한 시간만큼 월급을 책정한다. 한 타임당 2만5천...

[일다] (인터뷰) 경쟁의 시대에 ‘즐거운 연대’를 말하다

 [창간 이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터뷰” 코너를 <꿈이 있는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재개합니다. 세상에는 전문가,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가진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특별한 그녀들을 소개하는 <꿈이 있는 인터뷰>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편집자 주]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열정적인 사람, 칠월 작성: 서영미   <꿈이 있는 인터뷰>는 독자로서 보기에는 너무너무 멋진데, 인터뷰를 부탁받는 입장에서는 참 부끄부끄한 제목이다. 유명하지 않아도, 성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다 괜찮다지만 무려 <일다>의 인터뷰이지 않은가! 그런 부담감에 조마조마해하고 있을 때 딱! 하고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매우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한 사람. 이름도 시원시원하고 정열적일 것만 같은 칠월!   지난해 ‘젠더 스터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회의 자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젠더 스터디 네트워크’라는 이름은 아직 공식 명칭이 아니지만 그녀가 선택한 이름을 차용하기로 한다. 이 네트워크는 문화연구, 여성학, 영상 연구 등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의 지속가능한 연대를 위한 모임이다.) 당시에는 콘셉트도, 운영방안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들이 분분할 때라 적극적인 칠월의 모습이 특히 눈에 띄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만난 칠월은 오랜만에 본 느낌 없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 역시 인터뷰를 핑계로 그녀를 부러 만나기라도 한 듯 인터뷰와 수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의 지난 시간들을 즐겁게 공유했다. 그리고 인터뷰 제의를 받고나서, 하고 싶었던 얘기가 따로 없었는지 물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일 벌이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하다못해 대학 때 동아리도 3개나 들었으니까요. 학교에 없던 동아리까지 만들었어요.”   역시! 칠월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매사에 적극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