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재명 대통령 취임사에 없던 단어들


이재명 대통령 취임사에 없던 단어들
[주장] 새 정부의 핵심 철학 담은 취임사, 성평등·사회적 소수자 관련 의제 제외 아쉬움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취임식을 통해 임기를 공식 시작했다.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여당과 과반에 가까운 득표율을 가진 대통령의 조합으로 역대 가장 강력한 정권이 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민주주의, 국민주권 실현, 경제 회복, 안보 강화, 문화 진흥 등 다양한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성인지 감수성의 관점에서 이번 취임사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
젠더 문제, 단순한 '갈등' 아닌 구조적 현실

2025년, 한국 사회는 정치적 격변기와 함께 극심한 성별 갈등, 저출생 문제,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 등 다층적인 사회 갈등에 직면해 있다. 특히 성평등과 포용은 더 이상 특정 집단의 의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공동체 회복을 위한 핵심 과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21대 대통령의 취임사는 시대적 과제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연설은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 문화 진흥에 대한 언급은 풍부했지만, 성차별과 젠더 기반 폭력, 성소수자 인권과 같은 핵심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안은 사실상 부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남녀를 갈라 싸우는 지경"이라는 표현으로 성별 갈등을 언급했다. 이는 젠더 문제를 단지 경제적 저성장과 경쟁의 맥락에서 접근한 것이며, 구조적 차별과 정책 부재의 결과라는 본질을 간과한 표현이다.

젠더폭력, 성소수자 차별, 성별 불평등 등은 현실에서 통계와 사례로 반복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다. 이를 '갈등'의 수준에서만 다루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며, 국가 정책이 접근해야 할 방향을 흐리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남녀 갈등'이 아닌, 한국 사회의 저출생, 돌봄 위기, 노동시장 불평등과 맞닿아 있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다. 이 문제들은 '여성 차별'의 관점에서 분석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문제이나, 대통령의 취임사는 그 본질에 대한 인식 없이 피상적으로만 언급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24년 BBC는 한국의 초저출생 원인을 분석하며 "여성의 교육 수준과 직업적 역량은 증가했지만,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성평등의 제도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국제적 평가로, 저출생이 단순히 경제나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성차별 구조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출산과 양육의 책임이 여성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성평등 담론을 대통령의 국가 비전에서 누락한 것은 치명적인 인식 부족이다.

성소수자 차별 해소와 차별금지법 제정 역시 마찬가지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참여정부 시절 처음 발의된 이후 보수와 진보 정권 모두에서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번번이 유보되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여성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점점 더 일상화되고 있으며, 국제 사회로부터도 인권 후진국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나중에 논의하자"는 입장으로 미뤄졌던 이 법안은 이제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새로운 정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은 명백한 회피로 해석될 수 있다

-
광장의 목소리가 만든 정권, 응답해야 할 책무

2024년 12월의 거리에는 여성과 성소수자, 청년 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분노와 연대는 결국 탄핵과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이재명 정부는 그 정치적 지지 위에 세워졌다. 그렇기에 단순히 경제 회복이나 문화 진흥을 넘어서, 성평등과 차별 해소는 이 정부의 역사적 책무이자 정치적 약속이다

민주주의는 강한 자의 말이 아닌, 보이지 않는 자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새 정부가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배제된 이들의 삶에 대한 정직하고 냉철한 현실 분석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