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낭비할 시간이 없다... 여성가족부 장관, 이렇게 검증하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18개월째 장관 공백, 역대 최장 기간 동안 장관이 없는 부서가 바로 현재 여성가족부다. 최근 이재명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 지명자인 강선우 의원이 자진사퇴로 낙마한 후, 아직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가 지명되지 않은 상태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기다리며, 그를 검증할 정책적 과제를 짚어본다. 여성가족부가 추진해야 할 주요 정책은 다음과 같다.
① 비동의강간죄 도입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관련 형사법은 오랜 기간 '폭행 또는 협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의 구성 요건으로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간음'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곧 물리적 저항이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성폭력을 판단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기준은 성폭력 피해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성범죄를 판단하는 비동의 강간죄의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비동의 강간죄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 법적 개념이다. 유럽연합을 비롯한 국제 인권 기준은 이미 '동의 없는 성관계는 범죄'라는 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며,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은 동의 중심 강간죄를 법제화했다. 특히 스웨덴은 2018년 '성관계의 자유로운 동의'를 중심으로 한 성범죄법을 도입한 이후 성폭력 기소율과 유죄 판결이 크게 증가하는 효과를 보였다.
한국에서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법 개정 요구가 본격화됐다. 같은 해 여성단체들은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구호 아래 국회 앞 시위를 이어갔으며, 2020년에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이 발족되어 시민 청원, 토론회, 캠페인 등을 조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22년, 현행 강간죄가 피해자의 법적 보호를 제한한다고 지적하며 동의 기준의 도입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현행법의 문제는 피해자 보호의 실질적 부재에 있다. 많은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위협, 관계적 권력 차이, 정서적 압박 등으로 인해 물리적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적극적인 저항'의 존재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다수의 성폭력 사건이 불기소 또는 무죄로 종결된다. 피해자는 성폭력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며, 이는 이차 피해를 야기한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동의를 기준으로 법을 설계할 경우, 성관계는 쌍방 간의 명확한 합의에 기반해야 하며, '묵시적 동의'나 '거절하지 않았으므로 동의한 것'이라는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단순한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권리로 만들 수 있는 기초이기도 하다. 비동의강간죄 도입 방향(명시적 동의 기준, 처벌 수위, 수사 절차 개선 등)을 후보자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지가 검증의 핵심이다.
② 낙태죄 입법 공백 해소
한국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는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회복을 요구한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66년 동안 존재했던 낙태죄는 여성의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제도는 태생부터 남성 중심적 시선에 기반한 불균형한 법이었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자신과 태아의 삶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받으며, 사회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시민운동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되었으며, 특히 2010년대 이후 더욱 조직적이고 공개적인 목소리로 확장되었다. 2010년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을 폐지하라'는 요구로 구성된 '천주교 낙태죄 폐지 촉구 여성 100인 선언'과 같은 행보는 초기의 도전이었고, 이후 2016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결성되면서 운동은 체계성과 지속성을 갖추었다.
운동의 정당성은 헌법적 가치에 기초한다. 첫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신체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다.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삶에 대한 결정을 타인—특히 국가나 법률의 이름 아래 통제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헌법상 평등권과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둘째, 재생산 권리는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권리이며, 여성들이 교육, 직업, 가족, 인간관계 등 삶의 중요한 영역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핵심이다.
시민운동은 또한 낙태죄가 사회적 약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환경은 경제력, 정보 접근성, 사회적 지지망과 직결되어 있었고, 낙태죄는 저소득층, 미혼 여성, 청소년 등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비공식적이고 위험한 방식의 시술로 내몰았다. 그로 인해 건강을 해치거나, 법적 처벌의 위협 속에 심리적 고통을 겪는 여성들이 다수 발생했다.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거리에서의 집회와 행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정보 공유, 국제 연대, 언론 기고와 인터뷰, 그리고 낙태 경험자들의 증언 등은 모두 공감과 연대를 확장시키는 중요한 매개였다. 여성들은 '죄인이 아니라 시민'임을 선언했고, "낙태는 범죄가 아니라 권리"라는 구호는 운동의 정체성과 목표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은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형법 조항에 대해 위헌성을 인정했고, 국회는 2020년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라는 시한을 부여받았다. 비록 이후 법 개정은 정치적 지체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낙태죄는 효력을 상실했고, 이는 시민사회와 여성운동이 만든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은 단지 형법 조항 하나의 삭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성의 몸, 삶, 존재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근본적 물음과 도전이었고, 여성들이 사회적 권리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의 확대 과정이었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향후 대체 입법 방향(임신 주수 기준, 상담·교육 의무, 의료기관 지정 기준, 낙태 시술비 보험 적용 등)을 제시해야 한다.
③ 성별 임금격차 해소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약 31.2%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여성 근로자가 동일한 시간 동안 일해도 남성보다 약 70%의 임금만을 받는다는 의미다. 한국은 20년 가까이 이 순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격차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개선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임금격차는 단순히 개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구조는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공정성을 해친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꾸준히 상승해 70%에 육박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시간제·저임금 직종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성별임금격차의 주요 원인으로는 직종 분리(성별 직무 분리), 경력 단절, 고용 형태의 차이, 승진 차별 등이 지적된다. 여성은 서비스직, 행정 보조, 돌봄 등 저임금 직종에 집중되는 반면, 남성은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제조업, 기술직, 관리직 등에 더 많이 분포한다. 특히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은 여성의 임금 성장 곡선을 크게 꺾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동일 직장 내에서도 남녀 간의 임금차는 존재한다. 이는 명백한 구조적 불평등이 제도적, 문화적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기업의 인사 평가 및 승진 시스템도 남성 중심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다. 근무 시간의 절대치를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야근·출장·회식 등 전통적 직장 문화가 여전히 평가 요소로 작용하는 구조에서는 육아와 돌봄 책임을 병행하는 여성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OECD는 '임금투명성법' 도입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동일 직무에 대한 임금 공개를 의무화하고, 기업의 성별 임금통계를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로, 유럽연합(EU)은 2026년까지 전 회원국이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도 현재 공공기관 일부를 대상으로 성별 임금 현황을 공개하고 있지만, 민간 기업으로의 확대와 법적 강제성은 부족한 실정이다.
성별 임금격차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배제, 그리고 여성의 경제적 자율성의 제약을 구조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다. 격차 해소는 노동 정의의 문제이자,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의 핵심 과제다. 절반의 노동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공정과 효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성가족부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로서, 장관 후보는 성별 임금격차 해소에 대한 비전과 수행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④ 여성 정치 대표성 확보
한국 정치에서 여성의 대표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헌법은 남녀평등을 선언하고 있지만, 현실 정치에서 여성은 수적 소수자에 머물며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여성 정치인의 수는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
2025년 기준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은 전체 300석 중 약 20% 수준에 그친다. 이는 30%가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지방자치단체의 상황도 유사하다. 광역의회의 여성 비율은 약 20%, 기초의회는 30% 안팎이다. 특히 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이나 고위 행정부처 장관직 등 집행권을 가진 자리에서는 여성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하다.정치권의 구조적 배제 요인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천 과정에서 여성은 후보자로 우선 고려되지 않으며, 기존 정치권의 폐쇄성과 비공식적 네트워크는 여성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 지역 기반 정당정치의 특성과 남성 중심 정치문화는 여성 정치인의 성장과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 정치인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일부 존재하지만, 실효성은 낮다. 현재 공직선거법은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에 성별을 교차해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지역구 후보자에 대해서도 정당이 일정 비율 이상 여성 후보를 추천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이는 의무가 아니며 이행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정당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남성 후보 중심의 공천을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 정치 대표성 확대가 단순히 수적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의제 설정 자체를 바꾸는 데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여성 의원 비율이 높은 국가에서는 돌봄, 복지, 노동, 젠더폭력 등 삶의 질과 밀접한 문제들이 주요 정치 의제로 다뤄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다시 말해 여성의 참여는 정치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해외 사례는 제도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양성평등 정치 참여법'을 도입해 정당의 공천 명단을 남녀 동수로 의무화했고, 이를 어긴 정당에는 국고보조금을 감액하는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는 정당 자율 규범과 제도적 쿼터제를 병행하며 여성의 실질적인 정치 진입을 지원하고 있다.
정치에서 여성의 수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대표성과 정당성, 다양성에 직결된 문제다. 여성 없는 정치는, 결국 국민 절반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이며, 실질적 민주주의의 조건에서 멀어진다는 점에서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장관 후보자는 정치권과 어떤 협력체계를 마련할지, 구체적 목표치를 언제까지 달성할지를 제시해야 한다.
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한국은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국가다. 헌법 제11조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법적·제도적으로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일반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별, 장애, 성적지향, 나이, 출신지역, 가족형태 등 다양한 정체성과 배경에 따라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일관된 기준과 구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는 2000년대 초부터 지속되어 왔으나, 제도화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특정한 집단에 국한된 보호법이 아니다. 일상생활, 고용, 교육, 서비스 이용 등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예방하고, 차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구제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 법률이다. 현재 한국에는 성별, 장애, 연령 등 일부 영역에 대해 개별적인 차별금지 법제가 존재하지만, 차별 사유가 복합적이고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포괄적으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는 2007년 법무부가 입법을 추진하면서 처음 공론화됐다. 그러나 일부 종교계의 반대 여론과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법안은 철회되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수차례에 걸쳐 국회에 제정을 권고해왔고, 시민사회는 2010년대 이후부터 법 제정을 위한 조직적 운동을 이어왔다. 2020년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법제정촉구 공동행동 등이 중심이 되어 전국 단위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10만 청원, 릴레이 1인 시위, 전국 순회 활동 등이 이어졌다.
2021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국회 논의를 요청했으나, 정치권은 여야 모두 본격적인 심의에 나서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입법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보수 종교계의 조직적 반대와 성소수자 혐오 담론이 국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지목한다. 특히 일부 반대 세력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조장', '표현의 자유 제한'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며, 법 제정 자체를 저지하고 있다.
국제 사회의 기준은 이미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국제노동기구(ILO), 유럽연합(EU) 등은 반복적으로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왔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성별, 성적지향, 장애, 인종, 종교 등을 포함한 평등법이나 차별금지법을 운영 중이며, OECD 국가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영국은 2010년 제정된 평등법(Equality Act)을 통해 차별 사유별 구제를 통합했고, 독일은 일반평등법(AGG)을 통해 고용과 서비스 영역에서 차별 예방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확대되고 있다.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약 70%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입법 권한을 가진 국회는 수년째 실질적인 논의를 미루고 있으며, 일부 정당은 관련 법안을 발의만 한 채 실질적인 추진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 이주민 증가, 가족형태 다양화 등 복합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차별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루는 법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선언적 조치가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에서 최소한의 공적 규칙을 마련하는 법적 기반이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입법 방향, 차별 피해 구제 체계, 교육 및 홍보 방식 등을 그리고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정책 검증, 왜 필요한가?
성평등은 단순한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기본 인권의 기반이다. 과거의 상징이나 프레임이 아닌, 지금 현실에서 누구에게 얼마나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가 중요하다. 예비 장관은 단지 어떤 법이 필요한지 말하는 것을 넘어, 우선순위와 실행 일정을 제시하고, 예상되는 저항과 해결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장관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정책적 검증이다. 소모적인 논란과 정당적 분쟁으로 낭비할 시간이 여성가족부에게는 없다. 이재명 정부는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정책 실행력이 있는 인물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인선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법 개정 요구가 본격화됐다. 같은 해 여성단체들은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구호 아래 국회 앞 시위를 이어갔으며, 2020년에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이 발족되어 시민 청원, 토론회, 캠페인 등을 조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22년, 현행 강간죄가 피해자의 법적 보호를 제한한다고 지적하며 동의 기준의 도입을 국회에 권고한 바 있다.
현행법의 문제는 피해자 보호의 실질적 부재에 있다. 많은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위협, 관계적 권력 차이, 정서적 압박 등으로 인해 물리적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그러나 법원은 여전히 '적극적인 저항'의 존재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다수의 성폭력 사건이 불기소 또는 무죄로 종결된다. 피해자는 성폭력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했는지를 증명해야 하며, 이는 이차 피해를 야기한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동의를 기준으로 법을 설계할 경우, 성관계는 쌍방 간의 명확한 합의에 기반해야 하며, '묵시적 동의'나 '거절하지 않았으므로 동의한 것'이라는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단순한 선언이 아닌 실질적인 권리로 만들 수 있는 기초이기도 하다. 비동의강간죄 도입 방향(명시적 동의 기준, 처벌 수위, 수사 절차 개선 등)을 후보자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지가 검증의 핵심이다.
② 낙태죄 입법 공백 해소
한국 사회에서 낙태죄 폐지는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회복을 요구한 오랜 투쟁의 결과였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66년 동안 존재했던 낙태죄는 여성의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하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 제도는 태생부터 남성 중심적 시선에 기반한 불균형한 법이었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자신과 태아의 삶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받으며, 사회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해 왔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시민운동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되었으며, 특히 2010년대 이후 더욱 조직적이고 공개적인 목소리로 확장되었다. 2010년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을 폐지하라'는 요구로 구성된 '천주교 낙태죄 폐지 촉구 여성 100인 선언'과 같은 행보는 초기의 도전이었고, 이후 2016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결성되면서 운동은 체계성과 지속성을 갖추었다.
운동의 정당성은 헌법적 가치에 기초한다. 첫째,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신체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이다.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삶에 대한 결정을 타인—특히 국가나 법률의 이름 아래 통제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헌법상 평등권과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둘째, 재생산 권리는 단순한 건강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권리이며, 여성들이 교육, 직업, 가족, 인간관계 등 삶의 중요한 영역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핵심이다.
시민운동은 또한 낙태죄가 사회적 약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환경은 경제력, 정보 접근성, 사회적 지지망과 직결되어 있었고, 낙태죄는 저소득층, 미혼 여성, 청소년 등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을 비공식적이고 위험한 방식의 시술로 내몰았다. 그로 인해 건강을 해치거나, 법적 처벌의 위협 속에 심리적 고통을 겪는 여성들이 다수 발생했다.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거리에서의 집회와 행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정보 공유, 국제 연대, 언론 기고와 인터뷰, 그리고 낙태 경험자들의 증언 등은 모두 공감과 연대를 확장시키는 중요한 매개였다. 여성들은 '죄인이 아니라 시민'임을 선언했고, "낙태는 범죄가 아니라 권리"라는 구호는 운동의 정체성과 목표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은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형법 조항에 대해 위헌성을 인정했고, 국회는 2020년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라는 시한을 부여받았다. 비록 이후 법 개정은 정치적 지체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낙태죄는 효력을 상실했고, 이는 시민사회와 여성운동이 만든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은 단지 형법 조항 하나의 삭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성의 몸, 삶, 존재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근본적 물음과 도전이었고, 여성들이 사회적 권리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의 확대 과정이었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향후 대체 입법 방향(임신 주수 기준, 상담·교육 의무, 의료기관 지정 기준, 낙태 시술비 보험 적용 등)을 제시해야 한다.
③ 성별 임금격차 해소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심한 국가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3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약 31.2%로 OECD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여성 근로자가 동일한 시간 동안 일해도 남성보다 약 70%의 임금만을 받는다는 의미다. 한국은 20년 가까이 이 순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격차 해소를 위한 실질적인 개선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임금격차는 단순히 개별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구조는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공정성을 해친다.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꾸준히 상승해 70%에 육박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시간제·저임금 직종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성별임금격차의 주요 원인으로는 직종 분리(성별 직무 분리), 경력 단절, 고용 형태의 차이, 승진 차별 등이 지적된다. 여성은 서비스직, 행정 보조, 돌봄 등 저임금 직종에 집중되는 반면, 남성은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높은 제조업, 기술직, 관리직 등에 더 많이 분포한다. 특히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은 여성의 임금 성장 곡선을 크게 꺾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한 동일 직장 내에서도 남녀 간의 임금차는 존재한다. 이는 명백한 구조적 불평등이 제도적, 문화적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기업의 인사 평가 및 승진 시스템도 남성 중심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다. 근무 시간의 절대치를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야근·출장·회식 등 전통적 직장 문화가 여전히 평가 요소로 작용하는 구조에서는 육아와 돌봄 책임을 병행하는 여성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OECD는 '임금투명성법' 도입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동일 직무에 대한 임금 공개를 의무화하고, 기업의 성별 임금통계를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로, 유럽연합(EU)은 2026년까지 전 회원국이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도 현재 공공기관 일부를 대상으로 성별 임금 현황을 공개하고 있지만, 민간 기업으로의 확대와 법적 강제성은 부족한 실정이다.
성별 임금격차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배제, 그리고 여성의 경제적 자율성의 제약을 구조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다. 격차 해소는 노동 정의의 문제이자,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의 핵심 과제다. 절반의 노동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공정과 효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성가족부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로서, 장관 후보는 성별 임금격차 해소에 대한 비전과 수행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④ 여성 정치 대표성 확보
한국 정치에서 여성의 대표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헌법은 남녀평등을 선언하고 있지만, 현실 정치에서 여성은 수적 소수자에 머물며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유권자가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여성 정치인의 수는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
2025년 기준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은 전체 300석 중 약 20% 수준에 그친다. 이는 30%가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지방자치단체의 상황도 유사하다. 광역의회의 여성 비율은 약 20%, 기초의회는 30% 안팎이다. 특히 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이나 고위 행정부처 장관직 등 집행권을 가진 자리에서는 여성의 존재감은 극히 미미하다.정치권의 구조적 배제 요인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천 과정에서 여성은 후보자로 우선 고려되지 않으며, 기존 정치권의 폐쇄성과 비공식적 네트워크는 여성의 진입을 어렵게 한다. 지역 기반 정당정치의 특성과 남성 중심 정치문화는 여성 정치인의 성장과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 정치인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일부 존재하지만, 실효성은 낮다. 현재 공직선거법은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에 성별을 교차해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지역구 후보자에 대해서도 정당이 일정 비율 이상 여성 후보를 추천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이는 의무가 아니며 이행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정당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남성 후보 중심의 공천을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 정치 대표성 확대가 단순히 수적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의제 설정 자체를 바꾸는 데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여성 의원 비율이 높은 국가에서는 돌봄, 복지, 노동, 젠더폭력 등 삶의 질과 밀접한 문제들이 주요 정치 의제로 다뤄지는 경향이 뚜렷하다. 다시 말해 여성의 참여는 정치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해외 사례는 제도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프랑스는 '양성평등 정치 참여법'을 도입해 정당의 공천 명단을 남녀 동수로 의무화했고, 이를 어긴 정당에는 국고보조금을 감액하는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는 정당 자율 규범과 제도적 쿼터제를 병행하며 여성의 실질적인 정치 진입을 지원하고 있다.
정치에서 여성의 수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대표성과 정당성, 다양성에 직결된 문제다. 여성 없는 정치는, 결국 국민 절반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이며, 실질적 민주주의의 조건에서 멀어진다는 점에서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장관 후보자는 정치권과 어떤 협력체계를 마련할지, 구체적 목표치를 언제까지 달성할지를 제시해야 한다.
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한국은 여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국가다. 헌법 제11조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법적·제도적으로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일반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별, 장애, 성적지향, 나이, 출신지역, 가족형태 등 다양한 정체성과 배경에 따라 일어나는 차별에 대해 일관된 기준과 구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는 2000년대 초부터 지속되어 왔으나, 제도화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특정한 집단에 국한된 보호법이 아니다. 일상생활, 고용, 교육, 서비스 이용 등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예방하고, 차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구제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 법률이다. 현재 한국에는 성별, 장애, 연령 등 일부 영역에 대해 개별적인 차별금지 법제가 존재하지만, 차별 사유가 복합적이고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포괄적으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는 2007년 법무부가 입법을 추진하면서 처음 공론화됐다. 그러나 일부 종교계의 반대 여론과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법안은 철회되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수차례에 걸쳐 국회에 제정을 권고해왔고, 시민사회는 2010년대 이후부터 법 제정을 위한 조직적 운동을 이어왔다. 2020년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평등법제정촉구 공동행동 등이 중심이 되어 전국 단위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10만 청원, 릴레이 1인 시위, 전국 순회 활동 등이 이어졌다.
2021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에 대한 국회 논의를 요청했으나, 정치권은 여야 모두 본격적인 심의에 나서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입법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보수 종교계의 조직적 반대와 성소수자 혐오 담론이 국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지목한다. 특히 일부 반대 세력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조장', '표현의 자유 제한'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며, 법 제정 자체를 저지하고 있다.
국제 사회의 기준은 이미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 국제노동기구(ILO), 유럽연합(EU) 등은 반복적으로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왔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성별, 성적지향, 장애, 인종, 종교 등을 포함한 평등법이나 차별금지법을 운영 중이며, OECD 국가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영국은 2010년 제정된 평등법(Equality Act)을 통해 차별 사유별 구제를 통합했고, 독일은 일반평등법(AGG)을 통해 고용과 서비스 영역에서 차별 예방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확대되고 있다.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약 70%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입법 권한을 가진 국회는 수년째 실질적인 논의를 미루고 있으며, 일부 정당은 관련 법안을 발의만 한 채 실질적인 추진을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 이주민 증가, 가족형태 다양화 등 복합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만큼, 차별 문제를 구조적으로 다루는 법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단순한 선언적 조치가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에서 최소한의 공적 규칙을 마련하는 법적 기반이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입법 방향, 차별 피해 구제 체계, 교육 및 홍보 방식 등을 그리고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정책 검증, 왜 필요한가?
성평등은 단순한 여성의 권리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기본 인권의 기반이다. 과거의 상징이나 프레임이 아닌, 지금 현실에서 누구에게 얼마나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가 중요하다. 예비 장관은 단지 어떤 법이 필요한지 말하는 것을 넘어, 우선순위와 실행 일정을 제시하고, 예상되는 저항과 해결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장관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정책적 검증이다. 소모적인 논란과 정당적 분쟁으로 낭비할 시간이 여성가족부에게는 없다. 이재명 정부는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정책 실행력이 있는 인물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인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