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권성동·안철수의 '하남자 공방', 유치하다



권성동·안철수의 '하남자 공방', 유치하다

[주장] 정치는 '상남자' 만 한다는 성별 고정관념... 성숙한 시민의 언어가 필요하다

 국민의힘 권성동(왼쪽), 안철수(오른쪽) 의원

국민의힘 권성동(왼쪽), 안철수(오른쪽) 의원 ⓒ 오마이뉴스

최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강원강릉시)과 안철수 의원(경기성남시분당갑)이 서로를 두고 '하남자'를 운운하며 비난을 주고받았다.

안철수 의원이 내란 특검의 참고인 조사 요구에 불응한 것에 대해 권성동 의원은 30일 오전 "안철수 당대표 후보가 특검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면서 "여의도 대표 '하남자'"라고 비난했다. 이에 안 의원은 지난 2022년 7월 권 의원이 윤석열 당시 대통령과 주고 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캡처를 공개하며 "(윤석열의) 하수인"이라고 응수한 것이다.

두 사람은 상대의 정치적 태도나 정책적 입장이 아니라, '남자답지 못하다'는 식의 조롱을 택했다. 이는 단순한 감정싸움 이상의 함의를 갖는다. 왜 지금, 한국 정치의 중심부에서조차 성별 고정관념이 유치한 무기로 동원되는가.

한국 정치는 남자들의 경기장인가

'하남자'라는 말은 최근 유행하는 젊은 세대 신조어로 '상남자'의 반댓말이다. '상남자'는 강하고 결단력 있으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남성성을 이상화한 표현이고, 그 반대인 '하남자'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남성에게 낙인을 찍는 말이다. 감정적이거나 유약해 보이고,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질 때 쉽게 사용된다. 이러한 언어는 정치적 비판의 수준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문제는 이러한 성 역할 이데올로기가 정치 영역에서도 은연 중에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다양한 시민의 삶을 대변하고 조율하는 공적 영역이며, 당연히 여러 성격, 성별, 태도의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두 중견 남성 정치인이 서로를 '하남자'라 칭하며 조롱하는 방식은, 정치를 여전히 '강하고 결단력 있는 남성'만이 어울리는 공간으로 간주하는 오래된 환상을 드러낸다. 마치 '진짜 남자'만이 정치를 할 자격이 있고, 그 외의 태도는 무능이나 비겁함으로 연결된다는 식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단지 말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의 구조적 위계를 고착화한다. 정치 언어에 성별 고정관념이 개입되는 순간,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남성, 부드럽게 타협을 모색하는 남성, 여성 정치인, 성소수자 정치인 모두 '정치적 역량'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평가받게 된다. 결국 정치적 다양성은 위축되고, 특정한 성별과 태도만이 '정상'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젠더 위계는 대표성의 수치로도 드러난다. 2025년 7월 기준 제22대 대한민국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약 20.8%에 불과하다(총 298명 중 62명). 이는 OECD 평균 33.8%(2023년 기준)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이처럼 남성 중심적인 정치 구조는 단순히 선거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세계'라는 사회적 통념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여성 정치인은 외모와 사생활, 육아 역할 등 정치 외적인 요소로 평가받는 일이 다반사며, 남성 정치인이 겪지 않는 이중의 기준에 놓인다.

정치가 여전히 '상남자의 경기장'처럼 여겨지는 한, 여성 정치인은 '여성답지 않다'는 평가에 시달리고, 남성 정치인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공격받는다. 이 구조는 정치를 퇴행시키며, 시민의 정치적 상상력과 대표성을 제한한다.

문제는 권성동과 안철수의 발언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발언을 가능하게 한 구조적 공감대, 그리고 이를 비판 없이 소비하는 정치문화다. 정치는 '남자다움'을 겨루는 경기가 아니다. 정치인은 상남자일 필요도, 여자답거나 남자답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 정치는 다양한 인간들이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공동의 장이다. 정치 언어 속에 깃든 성차별적 위계를 직시하지 않는 한, 한국 정치는 여전히 '몇몇 남자들의 경기장'으로 남을 것이다.

진짜 '공정'한 경기장을 위한 노력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모습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모습 ⓒ 임병도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정치 언어에 대한 공적 감시와 성인지적 전환이 필요하다. 성별 고정관념에 기반한 조롱이나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정당 차원의 징계와 언론의 비판적 감시가 체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정치인은 공적 언어 사용에 있어 그 영향력을 자각하고, 성역할에 기대는 표현을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

둘째, 여성 정치 대표성 확대를 위한 제도적 개혁이 시급하다. 비례대표 여성 할당제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지역구 공천에서도 성평등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국회와 정당 내 성평등 교육 및 성인지 의사결정 체계 도입도 병행되어야 한다.

셋째, 정치 문화 자체의 재교육과 재설계가 필요하다. '정치 리더십은 남성성의 연장선'이라는 통념을 깨기 위해, 학교 시민교육과 언론, 공적 토론장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해체하는 담론을 꾸준히 축적해야 한다. 정치인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며, 그 자격은 성별이 아니라 능력과 책임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정치는 '진짜 남자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모두의 삶을 결정하는 공공의 장에서는 보다 성숙한 시민의 언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