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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5화) 누드모델이 천직이라 말했지만, 그것만으론 살 수 없어서

 누드모델이 천직이라 말했지만, 그것만으론 살 수 없어서

불규칙한 수입과 4대보험 부재...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인데"


누드 모델이 천직이라고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은 이것뿐이다. 그런데 천직이라기엔 내게 누드 모델 일을 통한 벌이의 비중이 너무 작다.


지난 학기, 그러니까 2025년 하반기(미술 모델에게 시간은 학기 단위로 흐른다)에 나는 모델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낮엔 집 근처 공립학교 급식실의 배식원으로 일하고, 저녁엔 다이닝 레스토랑 디너부 서빙으로 투 잡을 '뛰었다.' 모델 일 요청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방학 때 생계를 유지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었기에 4대보험이 되는 일을 구했고, 출근을 하느라 모델 일을 받지 못했다.


벌써 13년 동안 꾸준히 해 온 직업인데, 실은 매년 이 꼴이다.


모델 일만으론 살 수 없다는 것


모델 일로 온전히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알기론 다들 비슷하다. 주중에는 출근하는 생업이 따로 있고 주말에만 모델 일을 받거나, 모델 일을 포함한 시간제 일자리 2~3개를 병행하는 식이다. 어떤 선배는 평일엔 사무직 직장에 출근하고 주말엔 모델 일을 한다. 어떤 동료는 카페 아르바이트와 모델 일을 번갈아 가며 한다.


신입 모델을 모집하는 에이전시 등은 비교적 높은 시급(4만 원 내외) 혹은 일이 가장 많은 달(학기 중 시험 기간이 없는 시기)의 수입(월 300만 원 내외)을 홍보하지만, 그것이 연중 지속되는 금액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학기 중에는 일이 몰린다. 주 5일, 하루 4~6시간씩 수업이 잡힐 때도 있다. 그때는 '이번 학기는 모델 일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겠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시험 기간이 되면 수업이 멈추고, 방학이 되면 일이 뚝 끊긴다. 7~8월, 1~2월은 모델들에게 공포의 시기다. 학교는 방학이고, 사설 화실이나 작가 작업실의 일만으로는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신입 모델들은 방학 기간에 잠깐 다른 직업을 구했다가 돌아오지 못한다. 한 친구는 방학 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개강 후에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월급이 규칙적으로 들어오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너무나 이해가 된다.


또 다른 문제는 4대 보험이다. 내게는 의료보험이나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는 것이 모델 일에 전념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 되었다. 일을 하다가 다쳐도 산재보험이 없고, 다른 사정으로 일을 쉬게 되어도 실업급여와 같은 대책이 없다. 말 그대로 사각지대인 셈이다. 이 부분은 다른 프리랜서 직업도 마찬가지라 더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술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


작년에 나는 한동안 "예술활동증명" 제도에 희망을 걸었다. 국가가 공인한 예술인에게 임대주택 입주 기회를 준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서울에서 월세를 감당하며 사는 것이 점점 버거워졌다. 예술인 증명만 받으면 공공임대주택 신청 자격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누드 모델이란 직업은 예술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중개회사와의 계약서도, 대학으로부터 받은 월급명세서도 적격한 증빙이 되지 못했다. 수업은 공개된 예술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그럼 미술대학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소묘와 조소는 예술이 아닌 걸까? 거기에 몸으로 참여하는 나는 예술인이 아닌 걸까?


예술이란 뭘까, 예술인임을 국가가 인정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등의 수준 높은 질문을 할 여유가 없었다. 월세와 같은 고정 지출은 계속 나가는데, 수입은 불규칙적이니 미칠 지경이었다. 학교급식 배식원 일을 구한 것은 예술인 자격 증명을 포기한 다음이었다.


쉽게 진입하고 짧게 일할 수 있는 일만 구하다 보니 계속 요식업 서비스직을 전전했다. 이제 내 이력서에서 가장 이질적인 것은 여성학 대학원을 다녔다는 기록이다. 나는 차라리 그 이력을 지우기로 했다.


모델협동조합이 개인 사업자가 된 이유


2023년, 국내에서 처음 협동조합이라는 형태의 법인으로 창립한 '예술모델 협동조합'은 2025년 '예술모델 스튜디오'라는 명칭의 개인 사업자로 조직 형태를 전환했다. 법인에 요구되는 복잡한 법적 기준, 그로 인한 전담 인력의 소모, 높은 세금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회계 처리, 세무 신고, 조합원 관리 등 법인 유지에 필요한 행정 업무가 생각보다 많았고, 그걸 감당할 인력도, 자원도 부족했다.


나는 협동조합 창립 멤버이자 현재도 스튜디오에 소속된 모델로서,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중개 및 복지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 역시 당사자로서 모델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최선을 다해주시는 스튜디오 관계자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모델 '협동조합'이라는 형태가 지속되지 못한 데에는 아쉬움이 크다.


협동조합이 지속되었더라면 누드 모델 일만으로 예술인 자격을 인정받는 것이 제도화될 수도 있었을까? 조합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정부와 협상하고, 모델의 지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과정이 가능했을까? 중개나 파견 형태가 아닌 대학 직접고용으로 4대 보험에 가입하고, 방학에도 최소한의 수입이 보장될 수 있도록 다른 일거리가 지원될 수 있었을까? 부상이나 질병을 얻은 모델을 위한 안전망을 함께 고민해 볼 수도 있었을까? 모델들이 흔히 겪는 성폭력이나 노동 착취를 막을 수 있는 표준계약서나 법률 지원은 어떨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함께라면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스튜디오의 활동을 응원할 뿐이다.


예술 교육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누드 모델은 예술 수업의 가장 앞선 현장에서 몸을 매개로 창작의 기반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학생들이 인체의 비례와 구조를 배우고, 빛과 그림자를 관찰하고, 살아있는 형태를 화폭에 옮기는 모든 과정의 중심에 모델이 있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 구조는 그 기여를 충분히 보상하지 못한다. 수입이 불안정한 직업은 결국 지속할 수 없다. 경력 있는 모델들이 하나둘 현장을 떠나고, 신입 모델들은 한 학기를 버티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아 나선다.


이건 한 사람의 생계 문제를 넘어선다. 예술 교육의 질과 지속 가능성까지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더 많은 이들이 이해하길 바란다. 숙련된 모델이 없으면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없는 신입 모델, 학생들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델, 수업 중간에 그만두는 모델.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이다.


누드 모델이 천직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일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하며 존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4대 보험이 보장되고, 수입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이것은 모델 일뿐 아니라 어떤 직업도 마찬가지인 말 그대로 '최소한'의 요건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는 이 최소한의 선이 지켜지지 않기에 생긴다고 믿는다.


이 글이 그 구조를 바라보는 데 작은 단서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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