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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이 발언을 환영한다

나는 임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이 발언을 환영한다

[주장] 이재명 대통령의 임신중지 약물 '미프진' 도입 검토 지시에 붙여

원문: https://omn.kr/2j2se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14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14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초기 임신단계에서 임신 중지를 위해 복용하는 약물, 이른바 '미프진' 도입 검토를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에선 허용이 안 돼 여성들이 해외 직구로 복용하는 모양"이라며 "정부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정하게 투약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자보건법 개정 전이라도, 낙태 허용 범위와 투약 주수를 둘러싼 원론적 논쟁에 갇혀 진전이 없는 상황을 지적하며 나온 발언이었다. 나는 이 지시를 나 자신의 문제로 여기며 환영한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나는 임신할 계획이 없는 레즈비언이고, 통념대로라면 이 약은 나와 가장 거리가 먼 의제여야 하니까.


그러나 낙태권은 페미니즘의 오래된 의제였고, 무엇보다 한국의 2030 여성들이 거리에서 자기 목소리로 밀어 올린 의제였다. 2016년 10월,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서울 도심을 채웠다. 그해 9월 보건복지부가 임신중절 시술 의사의 자격을 정지할 수 있게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데 대한 분노에서 시작된 시위였다. 폴란드와 아일랜드의 시위와 국경을 넘어 조응한 '검은 시위'는 한국 여성 운동사의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2015년의 페미니즘 리부트, 그해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문제제기와 맞물려 온·오프라인의 페미니스트들이 새로이 조직됐고, 그 흐름은 2019년 4월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로 이어졌다.


그 거리에서 울려 퍼진 구호를 나는 잊지 않는다. "나의 자궁은 나의 것", "우리는 인큐베이터가 아니다", "태어난 사람이나 신경 써라". 이 구호들은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만의 것이 아니었다.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도구로 취급하는 시선 전체에 대한 거부였다. 그래서 나는 그 대열에 함께했다.


레즈비언인 내가 낙태죄 폐지를 환영했던 이유


지금은 레즈비언 커플도 정자기증 등의 방법으로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적인 관계 속에서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 할 때면 종종 같은 질문을 받는다. "그럼 애는 어떻게 낳을거야?" 처음에는 순진하거나 무신경한 호기심인 줄 알았던 그 질문의 의미를 시간이 지나 알게 됐다.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재생산(임신과 출산, 양육)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하는 삶의 경로라는 전제.


레즈비언인 나의 삶은 출산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닿지 못하는 미완의 삶으로 취급된다. 페미니즘 운동이 그토록 깨고자 했던 아내와 어머니만이 여성의 본질적 역할이라는 성차별적 통념 그 자체다. 여성의 역할을 재생산으로 한정할 때, 태아에 대한 권리는 임신당사자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있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도록 처벌했던 '낙태죄'의 폐지를 그토록 원했던 것은, 그것이 나의 몸과 성과 쾌락을 사회가 '허가'할 필요가 없다는 성소수자로서의 권리에 닿아 있기 때문이었다.


7년의 공백과 대통령의 한마디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를 선고한 뒤로 7년이 흘렀다. 법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채울 제도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 공백의 대가를 치른 것은 여성들이었다. 이 대통령의 표현대로, 여성들은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는 약을 해외에서 직구해 복용하다 사고를 겪어왔다. 검색창에 '미프진'을 치면 공신력 있는 정보 대신 불법 판매 사이트가 쏟아지는 나라에서, 여성들은 각자도생으로 자기 몸을 걸고 모험을 해왔다. 식약처 조사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온라인 불법 판매 적발 사례만 2641건에 달했다.


이 방치가 어제 어렵게 입 밖으로 나왔다. 이 대통령은 "몇 주로 할 것이냐 (논의)하다가 제 (대통령) 임기가 끝날 것 같다"며, 투약 가능한 주수를 법으로 못박기보다 의사의 양심과 전문적 재량에 맡기는 방법을 제안했다. "법 밖에 이들을 방치하며 정부는 책임을 모면하겠지만 국민은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 그 진단이었다.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지난 6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에 대해 "직을 걸겠다는 각오로 임기 내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 연결되는 발언이기도 하다.


임신중지약물 도입 찬반 논쟁의 오랜 프레임은 대체로 '약의 위험성'에 맞춰져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약 자체의 위험성이 아니라, 공식적인 의료 지원과 정확한 정보, 그리고 보건의료 연계 시스템의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여성이 위험한 이유는 약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그 시스템이 없어서다.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쓴 임신중지의 성공률은 임신 1삼분기에서 94.6%로 수술에 준하고, 이른 주수에서는 98%까지 보고된다. 약은 이미 검증돼 있다. 없는 것은 그 약을 안전하게 쓸 수 있게 하는 국가의 제도다.


의료계가 걱정하는 '현장의 혼란'도 결국 같은 틀의 부재를 가리킨다. 문제는 약을 여성에게 쥐여주는 일이 아니라, 약을 쥔 여성 곁에 아무 제도도 서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답은 도입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함께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문제는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사회


나는 이 진단을 나의 언어로 다시 읽는다. 문제는 여성의 몸이 아니라, 그 몸을 여성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인식이라고. 임신중지약이 단순한 의약품을 넘어 권리의 문제인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약은 집에서 스스로 임신을 중지할 수 있게 하고, 그만큼 여성을 임신중지 과정의 주도적 위치에 놓는다. 산부인과에서 위축되거나 비난받지 않고,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것. 이것이 임신할 계획 없는 나에게까지 이 약이 각별한 이유다.


국가가 손을 놓은 자리에서 여성이 자기 몸을 걸어야 한다는 것, 그건 내가 매일 다른 방식으로 겪는 일이기도 하다. 임신중지가 처벌받는 사회와 "그럼 애는?"이라는 질문이 지배하는 사회는 겉으로는 무관해 보이지만, 뿌리는 하나다.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니라 미래의 아이를 위해 예비된 그릇이라는 전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생명을 책임지지 않는 여자"로 지목될 때, 나는 그 옆자리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느낀다. 아이를 낳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할 생각이 없는 여자, 성생활을 통해 아이를 생산하지 않는 여자. 우리는 다른 이유로 같은 말을 듣는다. 네 몸은 네 마음대로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몸의 역사는 내가 쓴다


올해 10월이면 여성들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에서 외치기 시작한 지 10년이 된다.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나의 몸, 나의 선택)'라는 슬로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것은 임신한 여성만의 구호가 아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되찾으려는 모든 여성의 구호다. 누군가는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으로, 다른 여성은 임신을 중단하는 선택으로, 또 다른 여성은 기꺼이 출산하는 선택으로. 우리는 각자 다른 문장을 쓰지만 같은 문법을 요구한다: 내 몸의 역사는 내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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