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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만 참정권이라는 착각

 "제가 몇 표 받았는지..." 선관위와 민주당을 향한 본질적 질문

[주장] 투표권만 참정권이라는 착각


원문: https://omn.kr/2j6oh



 23일 압수수색을 마친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들이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오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 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날 오전부터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와 송파구·강남구·서초구 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했다. 2026.7.23 [공동취재]
23일 압수수색을 마친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들이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나오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 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날 오전부터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와 송파구·강남구·서초구 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했다. 2026.7.23 [공동취재] ⓒ 연합뉴스

투표는 참정권의 전부인가. 최근 나란히 불거진 두 사건은 이 물음을 정면으로 제기한다. 하나는 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향한 것이다. 두 사안은 정치적 진영도, 문제의 결도 달라 보이지만, 유권자가 던진 표 이후의 과정을 다루는 방식에서 놀랍도록 닮아 있다.


조작된 투표율, 감춰진 득표율


먼저 선거관리위원회를 보자. 지난 7월 23일,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의 투표율 조작 정황을 포착하고 압수수색에 나섰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선관위 실무자들이 투표율을 허위로 입력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아직 수사 초기 단계이고 혐의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황이 포착되어 강제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겁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유권자가 얼마나 참여했는지를 기록하는 가장 기본적인 숫자를 조작했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올림픽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는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며 부정선거 음모론과 뒤섞였고, 그 과정에서 사적 검문과 시설 점거 같은 명백한 불법으로 번졌다. 시위의 방식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처음 내걸었던 '참정권 침해'라는 문제의식마저 음모론으로 싸잡아 기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번 압수수색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투표용지가 실제로 부족했고 투표율이 조작됐을 정황까지 드러난 이상, 절차의 투명성에 대한 시민의 요구는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었다.


민주당의 경우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지난 7월 21일부터 23일까지 사흘간,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 예비경선이 치러졌다. 다섯 명의 후보 중 두 명이 탈락했고, 결과가 발표된 23일 탈락자 중 한 명인 김보미 예비후보는 이렇게 적었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몇 표를 받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민주당은 당규에 따라 예비경선의 득표수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는다. 본경선 진출자 명단만 발표할 뿐, 누가 몇 표를 받아 오르고 떨어졌는지는 후보 본인에게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당이 내세우는 명분은 당내 갈등과 분열을 막고, 지지가 앞선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논리를 뒤집으면, 당원이 결과의 실체를 알면 다음 선택이 왜곡되니 실체를 감추겠다는 뜻이 된다. 대통령선거도, 국회의원선거도, 지방선거도, 작은 지방자치단체의 주민투표조차 득표수를 공개한다. 후보에게 제 득표수마저 알려주지 않는 선거를 과연 '당원주권'이라 부를 수 있는가. 결과를 확인할 수 없는 투표는 던지는 시늉에 가깝다.


표를 던지는 순간만 호출되는 주권자


한쪽은 유권자가 얼마나 참여했는지를 담은 숫자를 조작한 정황으로, 다른 한쪽은 당원이 누구에게 표를 주었는지를 담은 숫자를 감추는 방식으로, 똑같이 투표 이후의 과정을 유권자의 손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둔다. 물론 두 사안의 무게가 같지는 않다. 하나는 형사 범죄의 정황이 드러난 수사 대상이고, 다른 하나는 나름의 명분을 내건 정당 내부의 규칙이다. 층위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유권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둘은 겹친다. 표를 던지게는 하되, 그 표가 어떻게 세어지고 어떻게 모였는지는 알 필요 없다는 것. 유권자를 주권자가 아니라, 투표하는 순간에만 잠깐 호출되는 존재로 대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흔히 품는 착각이 드러난다. 참정권이란 투표함에 표 한 장을 넣는 그 행위로 완성된다는 착각이다. 많은 이들이 선거일에 투표소에 다녀오는 것으로 시민의 몫을 다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표를 던지는 일은 참정권의 시작일 뿐이다. 내가 던진 표가 정직하게 집계되는지, 그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는지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투표 행위 자체는 형식만 남은 껍데기가 되고 만다.


3·15 부정선거가 가르쳐 준 것


역사는 이 사실을 피의 대가로 가르쳐 주었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은 제4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의 부정을 동원했다. 유권자의 4할에 해당하는 표를 미리 자유당 지지표로 채워 투표함에 넣어두는 사전투표, 이기붕 표로 채워진 투표함으로의 통째 바꿔치기, 세 명 다섯 명씩 조를 짜 조장이 지켜보는 앞에서 찍게 하는 공개투표, 그리고 야당 참관인을 협박과 폭력으로 투표소에서 몰아내는 축출이 자행됐다. 개표 과정의 조작은 어찌나 과했던지 이기붕의 득표수가 유권자 수를 초과하는 지역까지 나왔고, 놀란 자유당이 스스로 그 수치를 낮추라고 지시하는 촌극마저 벌어졌다.


그날 시민들이 분노한 것은 단지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던진 표가 어디로 갔는지, 그 표가 정직하게 세어지기는 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정권의 형식은 있었으나 그 실질이 통째로 도둑맞았다는 감각, 그것이 마산에서 시작된 항쟁을 4·19 혁명으로 밀어 올렸고 끝내 정권을 무너뜨렸다. 투표는 있었으되 투명성이 없었던 그 선거는, 투표 행위만으로는 결코 참정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역사적 반면교사다.


여기서 씁쓸한 역설 하나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올림픽공원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부정선거"를 외치는 이들 상당수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떠받든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가장 악랄하고 대규모였던 부정선거, 4할 사전투표와 투표함 바꿔치기로 온 나라의 표를 도둑질하고 끝내 4·19의 총성을 부른 그 3·15 부정선거의 주범이 바로 이승만 정권이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겠다는 이들이, 역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범을 국부로 모시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이들이 정말로 규탄하는 것이 '부정선거'인지, 아니면 그저 자기편이 지는 선거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부정을 미워한다면 그 부정에 시대와 진영의 예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사실관계를 가리는 눈 없이 구호만 요란한 분노는, 진상 규명을 돕기는커녕 정당한 문제 제기까지 음모론의 소음에 파묻어 버린다. 실제로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투표율 조작 정황까지 나온 이 사안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목청 높여 외치는 그들 자신인지도 모른다. 진짜 밝혀야 할 진실이 그들의 소란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투명성이라는 이름의 "진짜 참정권"을 위하여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최고위원들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해 인사하고 있다. 2026.7.22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최고위원들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해 인사하고 있다. 2026.7.22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진정한 참정권은 투표하는 순간이 아니라, 그 표가 지나가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열려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몇 명이 투표했는지, 각 후보가 몇 표를 받았는지, 그 숫자가 조작되지 않았는지를 시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집계의 투명성과 결과의 공개는 참정권에 딸린 부수적 절차가 아니라, 참정권 그 자체의 핵심이다.


선관위가 투표율을 정직하게 기록할 의무와 정당이 득표율을 숨김없이 공개할 의무는, 이름은 다르되 같은 원리 위에 서 있다. 시민이 자신의 한 표가 어디로 갔는지 끝까지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는 원리다. 66년 전 조작된 투표율과, 오늘 압수수색의 대상이 된 투표율과, 후보에게조차 공개되지 않는 득표율. 이 셋은 시대와 무게를 달리하지만 같은 것을 요구한다. 표를 던질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 표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 권리까지 보장될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주권자가 된다는 것.


올림픽공원의 인파는 이제 눈에 띄게 줄었다. 두 달 전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은 흩어졌고, 남은 이들의 목소리도 한여름 폭염 속에서 차츰 잦아들고 있다. 그러나 그 소란이 걷힌 자리에 던져진 질문마저 함께 흩어져서는 안 된다. 방식이 아무리 거칠었을지라도, 내가 던진 표가 정직하게 세어졌는가라는 물음만큼은 시민이라면 마땅히 물어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참정권은 투표소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앞선 자리, 누가 후보가 되는가에서 이미 시작된다. 그리고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표가 어떻게 세어지고 어떻게 공개되는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후보를 세우는 순간부터 결과를 내놓는 순간까지, 그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표를 도둑맞고서 거리로 쏟아져 나와야 했던 66년 전, 시민들이 외쳤던 정당한 참정권의 요구는 아직 절반밖에는 완성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선관위와 정당에 요구해야 할 것은 진정한 참정권을 완성하는 나머지 절반, 바로 투명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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