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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글) ''피로 물든 침대'를 두려워 하는 것은 누구인가

참고기사: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267232


침대 시트나 속옷에 피가 묻으면 나는 그것을 벗긴다. 마르기 전에 찬물에 담근다. 세탁기에 넣기 전 세탁비누로 애벌빨래를 한다. 피가 마르면 얼룩이 남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동작을 나는 13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반복해왔다. 생리대를 갈고, 속옷을 갈고, 어떤 날은 시트도 간다. 이것은 나에게 사건이 아니라 루틴이다. 놀라거나 울지 않는다.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피를 흘리는 것도 시트에 피가 번지는 것도 익숙한 피로일 뿐이다.

윤용근 의원이 그린 "피로 물든 침대"는 여성에게 낯선 이미지가 아니다. 그는 지난 9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10주 된 태아의 발 크기'를 본뜬 배지를 달고 나와, 한성숙 국무총리에게 미프진을 마약 합법화에 빗댄 끝에 이 이미지를 던졌다. 잠들고 있는 하얀 침대가 피로 물들고, 그 안에 죽은 태아의 모습이 있다는 것. 그가 그 이미지에 기대를 건 공포와 충격을, 나는 침대 위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매달 피를 보는 몸에게 피 묻은 침대는 처리해야 할 일감이지, 죽음의 전조가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여성은 피가 무섭지 않은가가 아니라, 왜 여성의 생식기에서 흘러나온 피만 유독 공포의 이미지로 소비되는가.

피 자체는 전시된다. 격투기의 피, 전쟁 영화의 피, 부상당한 군인의 피는 카메라 앞에 놓인다. 그것은 용기나 희생의 증거로 읽힌다. 반면 생리혈, 출산혈, 유산혈은 화면 밖으로 밀려난다. 생리대 광고는 파란 액체로 대체 표현을 써왔고, 병원에서도 이 피는 가장 사적이고 은밀한 절차 안에 봉인된다. 같은 액체가 어디서 나오느냐에 따라 영웅의 증거가 되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피 자체가 아니라, 그 피를 처리해본 경험의 유무다. 익숙한 피는 다뤄야 할 대상이 되고, 낯선 피는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된다. 윤용근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그린 "피로 물든 침대"는 스스로의 낯섦을 재료로 삼은 이미지였다. 피 묻은 시트 한 번 빨아 본 적 없음이 명백한 그는, 마치 시트에 묻은 피가 모든 여성에게 공포스러운 일인 양 묘사했다. 지금 피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런데 이 발언에는 그가 언급하지 않은 맥락이 있다. 한국에서 낙태죄는 아직 완전히 정리된 사안이 아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2020년 말까지 국회가 대체 입법을 마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국회는 그 시한을 지키지 못했고,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 없이 2021년부터 낙태죄 조항은 그대로 효력만 상실했다. '폐지'라기보다는 '방치'에 가까운 이 상태가 벌써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공백이 무엇을 낳았는지는 미프진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 이 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고, 지금은 80~100여 개국에서 합법적으로 쓰인다. 국내 제약사가 2021년 7월 처음 품목 허가를 신청한 이래 세 차례나 다시 신청했지만, 심사는 매번 법적 근거 미비를 이유로 미뤄졌다. 그 사이 여성들은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에서 익명으로 상담을 거쳐 수십만 원을 주고 진위도 용량도 확인할 수 없는 약을 구해왔다. 식약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임신중단 의약품 불법 유통 적발 건수만 2,641건에 달한다. 법이 없어 병원이 약을 못 내주니, 여성들은 병원 밖에서 혼자 구하고 혼자 삼켜야 했다.

이것이 지난 7년간 국회가 방치해온 현실이다. 그리고 윤용근 의원은 바로 그 국회의 일원으로서 대정부질문 단상에 섰다. 그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이미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상상된 '피로 물든 침대'가 아니라 메신저에서 정체불명의 약을 사서 혼자 삼키는 여성의 실제 침대였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 공백이 만들어낸 현실은 언급하지 않고, 대신 미프진을 마약에 비유하며 낙태 약물을 불법 수입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예 풀어버리자는 거냐고 되물었다. 이 비유는 성립하지 않는다. 마약은 어느 나라에서도 필수의약품이 아니지만, 미프진은 이미 전 세계 다수 국가에서 안전성이 검증된 약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발언이 하는 일이 분명해진다. 그는 법의 공백을 만든 국회의 무능을 여성의 몸에 대한 공포로 치환했다. 법을 만들지 못한 책임을, 법이 없어 위험을 감수해온 여성의 이미지에 떠넘긴 것이다. "피로 물든 침대"라는 수사는 그래서 단순한 망언이 아니라, 7년의 방치를 가리는 연막이기도 하다.

피를 처리해본 몸은 그 피가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그것이 생리인지, 유산인지, 임신중지의 결과인지 구분한다. 그 구분에 따라 다음 행동을 정한다. 병원에 가야 하는지, 하루 쉬면 되는지, 약을 먹어야 하는지. 이 판단은 낯선 몸이 대신 내려줄 수 없다. 대신 내려주겠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주권의 찬탈이다.

한국에서, 임신 유지를 결정한 이후의 무게는 성별에 따라 다르게 매겨진다. 임신과 출산으로 몸이 겪는 변화, 육아로 끊기는 경력,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해 다시 밀려나는 자리. 이 몫을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떠안아온 사회에서, 그 몫을 감당할지 말지를 정하는 결정까지 여성이 아닌 다른 이의 손에 맡길 이유는 없다. 결과를 떠안는 몸이 결정도 떠안아야 한다. 그것이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였다. 다만 그 결정 이후 국회가 해야 할 몫—대체 입법—은 7년째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몸이어야 한다. 겪어보지 않은 몸이 상상한 공포가 아니라, 겪어본 몸이 판단한 필요가 그 결정의 근거여야 한다는 뜻이다. 7년간 법의 공백 속에서 여성들이 검증되지 않은 해외 직구 약물에 몸을 걸어온 것도, 처리할 줄 아는 몸이 처리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온 과정이었다. 그 몸에게 "기다리라"고 말할 자격은, 그 몸을 살아본 적 없는 쪽에는 없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미프진 도입 방안을 공개적으로 지시하면서 멈춰 있던 논의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은 7년째 미뤄온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것이지, 국민 앞에서 공포 이미지를 전시하며 논의를 다시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다.

익숙한 몸과 낯선 몸 중 누가 그 몸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분명하다. 피를 처리해본 몸이, 피를 두려워하는 목소리보다 먼저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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