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소회
2024년 말일이다.
인스타를 엄청나게 보고 있는데, '돋보기' 탭을 요새야 쓴다. 전엔 릴스만 봤다. 알고리즘 덕분으로 비슷한 게 계속 뜨는데, "사람이 35세가 넘으면 후져지는 이유" 라던지 "당장 손절해야 하는 사람 특징" 이런.. 부정적인 인간상에 대한 글이 자꾸 뜬다. 다 내 얘기 처럼 느껴지고 위축된다. 내 주변 사람이 나를 이렇게 보고 있을거라는 피해의식까지 딱 그대로다.
근래.. 꽤 오래 나를 지배한 깔때기(?) 는 "말 섞기 싫음" 인 것 같다.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재채기하고 코를 풀고, 다리를 벌리고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들.. 이 쑤시며 쯥쯥 소리를 내는, 걸으면서 흡연하고 가래를 뱉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생리적인 혐오를 느끼는 것은 사실 젠더의 문제이기도 하고, 공공시설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계급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나는 마주하고 고치기보다는 피해왔다. 말을 해서 들을 인간이면 애초에 저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경험적 앎 덕분이다.
말 섞기 싫음. 누가 보는 글도 쓰기 싫음. 소통할 필요 없음.. 이런 무기력, 수동적 분노가 지난 몇년 간 지속 되었을 뿐 아니라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그렇고, 인간관계,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내가 그만 둔다. 차단한다. 친구를 끊는다. 헤드셋을 끼거나, 다른 칸으로 간다. 이게 최선이라고 믿는거다. 왜냐면 달라지지 않으니까. 나 또한 변하지 않는 걸 뭐.
예술가, 진보정치인, 정확해서 아름다운 글을 쓰는 비평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깃발을 올렸던 동료, 이런 사람들이 강간한다, 비동의촬영하고 합성하고 유포한다, 새 담배를 뜯으며 비닐과 종이를 길에 던진다, 난민과 외국인의 얼굴을 때린다, 이어폰 없이 유튜브를 본다, 여자는 혹은 퀴어는 혹은 트랜스는 아직 차례가 아니라고 윽박지른다, 공용공간에서 욕설 섞인 혼잣말을 한다, 사담 통화를 하고 또 한다, 새치기한다, 자리를 뺏는다. 나한테는 같은 폭력이다. 타인의 신체와 감정과 자원과 자율성과 시간과 공간을 침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기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역사관의 불일치, 정치적 입장차, 물리적 폭력, 감정적 학대, 인간적인 비호감이 거의 동등하게 나를 괴롭힌다. 나는 누구의 곁에도 머물 수 없고 어디에서도 쉴 수가 없다.
연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굳이 지켜야 할 이름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