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

어떤 인물을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여론이 있을 때, 이러한 공개적 비난이 정당화되는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이유는 그 대상이 ‘공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엄밀히 말해, ‘공인’은 법적 또는 제도적 맥락에서 통상 정무직 공무원을 가리킨다. 선거로 선출되거나 국회의 동의를 통해 임명되는 고위 공직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의 직위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존재로서 사생활을 검증받는 것이 정당하다. 반면 사인의 경우, 법률 위반에 대해서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벌을 받으면 될 일이며, 그 외의 도덕적 입장차가 있는 행위는 개인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예를 들어 다자연애나 혼외정사는 현재 한국에서 법적으로 처벌되지 않으며(간통죄는 2015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되었다), 한 쪽의 유책 사유가 있는 이혼이라면 민사 절차에 따라 위자료를 지급하면 될 사안이다. 이는 법치주의 국가가 작동하는 방식이며, 국가 공동체가 오랜 논의를 거쳐 합의한 핵심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공인’이라는 말은 훨씬 넓은 범위로 사용된다. 특히 연예인, 스포츠 선수, 크리에이터 등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유명인'을 사람들은 ‘공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논하며, 공적 책임을 요구한다. 이처럼 유명인과 공인을 동일시하는 인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이것이 ‘명성 경제’라는 가치관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명성 경제’란 단어는 아직 널리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설명하기에 유용한 틀이다. 여기서 인지도(Fame)와 평판(Reputation)은 곧 경제적 자산으로 기능한다. 전통적으로 실력, 품질, 인격, 정의, 윤리 같은 요소들이 평가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노출수, 조회수, 재생수, 팔로워 수 등이 곧바로 돈이 된다. 즉, 인플루언서 마케팅, 유튜브 광고 수익, 기업 협찬 등의 구조에서 보듯, ‘얼마나 많이 알려졌는가’가 가장 강력한 자본이 되는 시대다.

이러한 시스템은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동기화된 결과이다. 기대와는 달리, 이러한 초연결은 인류의 삶을 개선하지 못했고,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초착취로 이어졌다. 소비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경제 구조는 쓰레기산과 쓰레기섬을 생산하는 소비욕망을 조장하고 있다. 더 많이, 더 빨리 소비하고 버리는 것이 ‘발전’으로 간주되는 세계에서, 인지도를 이용한 대중 노출을 통하여 소비의 자본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명성 경제이며, 그 중심에는 광고와 저널리즘이 있다.

쏟아지는 '연예가 뉴스'는 공인과 유명인을 혼동하게 한다. 이 때문에 대중은 유명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검증하고, 품평한다. 아래는 그 사례들이다.
  1. 2023년 말, 국내외 영화제 수상으로 급부상한 배우가 자살했다. 마약 복용과 성매매 의혹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십억 원의 광고 위약금이 자살의 동기일 수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2. 또 다른 유명 배우는 혼외자의 '등장' 전 이미 광고 출연을 피했다고 알려졌다. 해당 인물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수 여성에게 당혹스러운 플러팅을 했다는 폭로도 있었지만, ‘품위 유지’ 조항 위반으로 위약금을 물 가능성은 미리 차단했다.
  3. 24세에 생을 마감한 여성 배우의 비극 이후, 전 연인으로 알려진 남성 배우의 광고 위약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처럼 죽음, 이혼, 연애, 성적 관계 등 철저히 사적인 영역마저도 ‘명성 경제’의 틀 속에서 평가되고 소비되는 현실에 진절머리가 난다. 우리는 유명인의 사생활을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며 가지며 그를 ‘공인’이라 지칭하는 행위를 정당화하지만, 사실 그 판단은 오로지 소비자로서의 권한, 즉 구매력에 기댄 경제 논리일 뿐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선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원칙이지, 연예인 등 단순 유명인에게 적용할 구호가 아니다. 유명세가 권력이 되는 까닭은 세인의 시선 덕분이며, 평판이 영향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성 경제만이 유일하게 작동하는 천박한 세계관에 동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정의와 윤리, 가치와 의미, 양심에 대한 전면적 부정이며, 법치 공동체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만하자. 알아야 할 가치가 있는 뉴스를 쓰고, 보자. 우리가 감시해야 할 대상은 광고 모델이 아니라 광고주이고, 재판정에 세워야 할 것은 유명인이 아닌 고위공직자이며, 그 수는 끝이 없다.




* 물론 수사와 판결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 현실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또 다른 과제다.